"도련님 오늘 학교 첫날인데 이렇게 늦게 일어나셔도 되는겁니까?"
아침부터 노년의 집사의 목소리가 저택에 울려퍼진다. 쓴웃음을 지으며 렌은 얼른 교복으로 갈아입고 손에는 오픈핑거 글러브를 끼고 저택을 나선다.
어젯밤 늦게까지 두꺼운 마술서적을 끼고 씨름을 한게 크나큰 실수였다. 어려운 단어가 나열된 문장을 보다가 그만 늦잠을 자버린것이다.
호무라바라 학원. 후유키시에 존재하는 학교중 하나이다. 렌은 어느샌가 새로운 학교에 전학수속이 되어있는걸 보고 아버지의 용의주도함에 새삼 놀라며 자신이 다니게될 새로운 학교의 정문을 넘었다. 우선 교무실에 가서 반을 알아보니 2-C였다.
"C반이라....으으 새로운 반에 잘 적응할수 있으려나....."
담임선생은 일본 어딜가나 흔히 볼수 있는 그런 타입의 인간이었다. 얼마뒤 새로 지내게될 반으로 들어선 렌의 눈앞에는 처음보는 학생들이 잔뜩있었다. 다들 어디서나 있을법한 그런 학생들이었지만 그중 한명에게 눈이 쏠렸다. 여학생이었다. 렌도 당연히 한창때의 남자인지라 이성에게 관심이 있었으나 그것 외에도 그 여학생은 다른 학생들보다 더욱더 강한 존재감을 내뿜고 있었다. 엄청난 미소녀였다. 단정한 단발에 머리를 한쪽으로 묶은 포니테일에 윤기가 흐르는 흑발. 뭔가 먼곳을 쳐다보고있는듯한 눈빛에 푹빠져 들것만 같았다.
"에...여러분에게 전학생을 소개하겠어요. 이름은 키리사키 렌. 도쿄에서 학교를 다니다가 부모님 일로 당분간 여기로 이사와서 여러분과 같이 공부하게 되었습니다. 자 그럼 전학생 인사를."
"모두들 안녕? 키리사키 렌이라고해. 앞으로 잘지내보자."
어색하게 웃음을 짓는 렌. 렌의 자리는 아까 눈에 확들어왔던 그 소녀의 옆자리였다.
"어...안녕? 아까도 인사했지만 난 키리사키 렌이라고해. 앞으로 잘부탁해."
"...응 내 이름은 엔도 사야. 잘부탁해"
엔도 사야. 그것이 그녀의 이름인듯했다. 뭔가 예쁜 이름이라고 생각하자 옆자리에서 수군대는 소리가 들려왔다.
"야 근데 어째 요즘 전학생 많지 않아?"
"그러게 한달전에 B반에도 전학생이 왔잖아."
"아 그 콧대높은 아가씨말이야?"
"그 성격만 빼면 진짜 미인인데 말이야...."
"어이 너 그 사람한테 고백하려고? 아서라 지금까지 고백했다 차인 남자 수만 한 트럭일걸?"
이상하게 이학교에는 전학생이 많은듯 하다. 하지만 그건 지금의 렌에게 있어서 중요한일은 아니었다. 우선 성배전쟁때문에 이곳에 와있지만 학교에 있는 동안은 렌도 한명의 학생.
학업은 학생의 본분이다. 그리고 첫날이라 그런지 아직 학교 분위기에 익숙해져있지 않다.
시간은 그럭저럭 흘러갔다. 점심시간에 C반의 위원장인듯한 안경 소녀가 학교의 시설 여러곳을 안내해주었다. 특별활동도 여럿 있는거 같았지만 그중 어느것도 렌의 마음에 드는건 없었다. 방과후 렌은 살짝 지친 듯한 기색을 보이며 교문을 나섰다. 쉬는시간 같은 클래스의 여학생들이 이것저것 물어대는 통에 거기에 대답해주는것만으로도 정신적으로 약간 지친다.
통금시간인 7시까지는 아직 시간이 남아있어 번화가로 자리를 옮기기로 했다. 지금도 저택을 지키고 있을 노년의 집사는 시간관념이 철저하다. 통금시간을 어기면 여러가지로 귀찮은 상황이 일어날것이다.
번화가는.....뭐 그리 번잡하지는 않지만 사람이 제법 많았다. 이곳이 성배전쟁의 전장이 되는 것인가..... 성배전쟁에 나가는 이상 꼭 이기겠다는 마음은 가지고 있으나 이곳이 전장이 되면 이곳에 사는 사람들은 어찌 되는것일까....이런 생각을 가지며 길을 걷자니 문뜩 인파속에서 엔도 사야의 모습이 보였다.
"어....? 엔도 아냐? 이런데에 무슨 볼일이지?"
시간은 아직도 널널 하기에 그녀가 뭣때문에 이곳에 왔는가를 보러 따라가보았다. 그녀는 근처의 큰 대형 서점에 들어갔다. 렌도 왠지모를 호기심에 그녀를 따라 들어갔다. 그리고 최대한 안들키게끔 거리를 두며 책구경하는 손님으로 위장했다.
사실 이건 스토킹의 범주에 들어가는 행위지만 지금의 렌에게는 아무래도 좋았다. 1시간정도 책을 구경하던 엔도 사야는 책 몇권을 사들고 밖으로 나갔다. 뭔책을 샀는지는 모른다. 계속 그녀를 따라 걷던 렌은 건널목에서 갑자기 인파가 들이닥치는 바람에 그녀의 행방을 놓쳤다.
그래서 그만 렌도 집에 가기로 했다. 아직 통금시간이 되려면 한참 남았지만 딱히 번화가에서 할건 없었다. 번화가에 온것도 일종의 변덕이었다. 뭐 앞으로 싸울 전장이 될곳을 미리 둘러본다는 의미도 있긴하지만.......
"하...피곤하다. 그만 집에 갈까?"
길을 따라 걷던 렌의 눈에 들어온것은 엔도 사야. 그리고 그 주변을 둘러싼건 흔히 말하는 양아치들이었다. 나이는 렌과 비슷해 보이나 복장부터가 불량해 보인다. 게다가 몇명은 담배를 들고 있었다. 그리고 아무리 봐도 엔도 사야를 꼬시려는듯 해보였다. 흔히 말하는 헌팅이다. 하지만 그녀에게는 그럴의사가 없어 보였고 저건 누가봐도 강제로 어디론가 끌고가는 상황. 저런 짓을 제일 싫어하는 렌으로써는 그냥 보고넘길수 없다.
그리고 그것이 같은 반의 동급생이라면 더더욱 그냥 넘길수 없다.
양아치의 숫자는 10명정도. 하지만 격투기로 몸을 단련시킨 렌에게는 강화마술을 쓸필요도 없이 그정도의 숫자는 쉽게 상대가능하다.
양아치 무리와 소녀는 으슥한 골목길로 들어갔다. 렌은 안들키게끔 조심조심 그 뒤를 밟았다.
"큭큭큭 그러게 좋은말할때 튕기지말고 우리랑 놀자니까?"
"...."
"어이 뭐라 말좀 해봐."
"...져."
"뭐?"
"꺼져 할줄아는거라고는 단체로 여자 협박하는 놈들아."
"...뭐? 이게 정말...!"
소녀의 도발적인 말에 열이 뻗친건지 양아치 하나가 손을 든다. 아마도 손찌검을 할생각이겠지. 그걸 먼발치에서 쳐다보던 렌은 그대로 다리에 바람의 마술을 써서 도약. 빠른 속도로 달려가 그양아치의 손목을 붙잡았다.
"넌 또뭐야? 아니 그보다 어디서 나타난거야?"
"그건 알거 없고...너네들 진짜 할일 없냐? 사내자식들이 단체로 여자한테 협박이나 해대고...정말 구제불능이구만?"
"이게 보자보자하니까 너 죽고싶냐 앙?"
"보아하니 이동네에서 못보던 놈인데...우리 소문 못들었냐? 이구역의 미친놈들이 바로 우리야 임마"
"그건 모르겠고....시간없으니까 한꺼번에 덤벼라 한번에 정리해주마."
"아니 이 놈이....? 야 뭐해 얼른 조져!"
양아치들이 덤벼든다 그래봤자 렌의 상대는 되지 못한다. 내지르는 주먹을 슬쩍 피한후 비어있는 배에 주먹을 내다 꽂는다.
퍼퍽!
"크윽!"
"이 자식이?"
한놈이 비틀거리자 다른 한놈이 달려든다. 하지만 별다른 공격을 해보기도 전에 발차기 한방에 나가떨어진다. 그리고 또 한놈이 뒤에서 달려든다. 하지만 뒤돌려차기한 방에 또 나가떨어진다. 이번에는 덩치가 있는 놈이 달려든다. 녀석의 주먹을 피하면서 복부에 몇방 맹렬하게 주먹을 내다 꽂았다.
"크윽?!"
"덩치는 이렇게 크면서 엄살은....."
덩치큰 녀석이 배를 움켜쥐자 그대로 니킥으로 안면을 찍어버렸다. 당연히 그녀석은 성대하게 코피를 뿜으며 뒤로 주춤했고. 렌은 그대로 달려들어 냅다 드롭킥을 꽂아주었다.
벌써 5명정도가 쓰러지자 남아있던 양아치들중 한명이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저...저놈 혹시 그놈 아냐? 3일전부터 불량 그룹을 때려눕히고 다닌다는 놈말이야. 힘도 무지하게 세고 날리는 기술이 하나같이 날카로운게....그놈하고 흡사해."
그말을 듣자 대치중이던 양아치들이 술렁이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서로 눈치를 보면서 주춤거리기 시작했다.
"어이...설마 이 부근의 패자였던 사사키 그룹을 패버린것도 저녀석이 한짓이야...?"
그러고보니 3일전 마을지리를 익히려고 집을 나선 렌은 어떤 양아치그룹과 만난적이 있었다. 살짝 어깨를 치고 지나간건데 그걸로 트집잡힌것이다. 물론 그후 그 양아치그룹은 렌에게 얻어터져서 병원에 실려갔었었다. 그후 어찌 됬는지는 모르지만 아마도 그후 양아치짓은 못하게 된듯 했다.
"흠...그러고보니 3일전에 어떤 양아치들이 나에게 시비를 걸길래 손좀 봐줬지. 근데 그놈들이 이 주변에서 힘좀 깨나 쓴다는 녀석들이었나 보네? "
그러면서 렌은 씨익 웃으면서 양아치들에게로 한발짝 더 다가섰다. 그러자 양아치들은 한발짝 더 뒤로 물러났다. 렌은 내심 이녀석들이 쫄아서 어쩔줄 모르는 모습에 한심하다고 생각한후 옆에 있던 사람머리 하나만한 콘크리트 조각을 하나 들어 공중에 띄운후 그대로 주먹으로 쳐서 박살을 냈다. 그후 눈앞의 양아치들을 쳐다보며 최후통첩을 했다.
"나도 바쁜몸이라 여기서 너네들하고 더 놀아줄수는 없겠고...어때? 여기서 그만둘래? 아니면 저기 바닥에 뒹구는 녀석들처럼 손좀 더 봐줘?"
그러자 양아치들이 혼비백산해 동료도 버리고 도망쳤다. 그리고 다들 하나같이 영화의 3류악역처럼 "두고보자!"를 외치며 저멀리 뛰어갔다. 양아치들이 시야밖으로 사라지고 나서야 렌은 자신의 싸움을 쳐다보고있던 엔도 사야를 발견했다.
"엔도 괜찮아?"
"응...."
그녀는 아무렇지도 않다는듯이 일어나 옷을 털더니 그냥 제갈길을 갔다. 렌은 뭐 딱히 칭찬받으려고 한 행동은 아니었으나 그래도 고맙다는 소리정도는 들어도 된다고 생각했으나 아무렇지도 않게 자기갈길을 가는 엔도 사야를 보며 그저 쓴웃음을 지었다.
근데 길을 걷던 엔도 사야는 갑자기 발걸음을 멈추고 서더니 이쪽으로 쳐다보지도 않고 이렇게 말했다.
"...고마워 키리사키가 아니었으면 큰일을 당했을지도 몰라. 그럼 내일 봐."
이렇게 말하고는 엔도 사야는 재빨리 렌의 시야밖으로 사라졌다. 렌은 슬슬 집에 들어가지 않으면 집사에게 혼난다는 사실을 떠올리고는 얼른 자기 집으로 가기 시작했다.
한편 거리를 혼자 걷던 엔도 사야는 갑자기 가던길을 멈추고 서더니 혼자서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키리사키 렌...방금 그 콘크리트 조각을 부순건 강화마술로 자신의 신체를 강화한건가...역시 그도 마술사였어....그 신체능력은 놀랍지만...내가 소환할 영령에는 이기지 못하겠지...후훗...그도 성배전쟁에 나오려나? 뭐 나오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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